스완지 시티 A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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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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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지 시티 AFC는 웨일스의 프로 축구 클럽으로, 현재 EFL 챔피언십에 참여하고 있는 팀이다. [5]
2. 상징
2.1. EPL 최초 웨일스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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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고지 스완지는 영국 웨일스 남부 해안에 위치한 항구 도시. 형성 초기에는 바이킹들의 교역지로 번성했고, 산업 혁명 시기에는 구리 산업의 요충지였다. 도시명은 스칸디나비아어로 해협을 의미하는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웨일스어 이름으로는 아베르타우에(Abertawe)로 타우에(Tawe), 강의 입구 라는 의미이다.
- 스완지 시티는 EPL이 창설된 1992년 이후 처음으로 잉글랜드 1부 리그에서 뛰는 웨일즈 클럽으로 기록됐다. 2010-11 시즌 2부 리그인 풋볼 리그 챔피언쉽에서 3위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 노팅엄 포레스트 FC와 레딩 FC를 꺾고 승격되어 11-12 시즌부터 웨일즈 팀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에 참여하게 되었다. 전통의 웨일스 No. 1 팀인 카디프 시티를 제치고 이룩한 쾌거이다. 웨일스 사람들은 EPL에 참가한 최초의 웨일스 클럽 스완지 시티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 스완지 시티 서포터즈의 애칭은 잭(Jacks). 두가지 통용되는 가설이 있는데, 첫번째는 예로부터 스완지 출신 선원들이 일을 잘하기로 유명한 덕택에 '스완지 잭'이 유래했다는 설. 두번째는 1930년대 여러 해에 걸쳐 물에 빠진 27명을 구해 유명해진 구조견 '스완지 잭'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2.2. 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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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완지시티의 마스코트는 백조(Swan). 스완지 시티 경기 때면 경기장에 나타나 흥을 돋는 역할을 한다. 이 마스코트가 유명한 것은 상대 구단의 마스코트나 안내 요원들과 종종 벌이는 싸움 때문인데 2003년 밀월의 마스코트 잠파(사자)를 상대로 이단옆차기를 구사하며 싸워 1천 파운드(약 200만원)의 벌금 징계를 받는 등 열성적이다.
- 마스코트 이름은 시릴(Cyril). 2005년에 암컷 백조 마스코트인 시빌(Cybil)을 만들어 둘의 가상 결혼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 물밑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백조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패스 중심의 축구 스타일로 유명하다.
3.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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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일즈 스완지 출신의 여배우 캐서린 제타존스가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구단이기도 하다. 캐서린 제타존스는 스완지 시티의 옛 홈 구장인 벳치 필드 근처에서 자랐다. 스완지 시티의 새 홈 구장(리버티 스타디움) 개장 행사에 축하 전문을 보내거나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도 웨일즈 대표팀과 스완지 시티의 경기를 TV로 시청할 정도로 축구에 애정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에는 스완지 시티 회장을 지낸 삼촌(로버트 존스)의 제안을 받고 남편 마이클 더글라스와 함께 구단 인수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온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인수하지 않은 듯 하다.
- 12-13 시즌에는 리그 컵 우승과 더불어 여러모로 좋은 구단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부 리그에서 올라오자마자 중상위권에서 떨어진적이 없는 리그 순위, 그리고 두 시즌만에 리그 컵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명확하게 발전하고있는 구단의 전력 등등.. 구단의 지분 20%를 가지는 구단 이사가 서포터들에게 투표로 뽑히는 서포터 출신이다. EPL에서 유일한 서포터가 운영하는 구단이어서 향후 행보가 주목되었지만 .... 경제적으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서포터즈 운영 방식으로는 재정적으로 버거운 부분이 있는지라 최근 미국 자본가가 인수를 하면서 16-17 시즌부터 함께 경영에 참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현실로 이루어졌다.
- 2013년 1월 24일에 열린 캐피탈 원 컵 4강 2차전 스완지 시티와 첼시의 경기 도중 첼시의 에당 아자르가 골 라인을 넘어간 공을 두고 볼보이와 실랑이를 벌이다 볼보이의 복부를 걷어찼다. 볼보이가 스완지의 승리를 위해 시간을 끌려고 볼을 바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볼보이는 당시 스완지 시티의 최대 주주 모건 부부(23.7% 지분 소유)의 아들 찰리(19)로 밝혀지면서 화제를 모았다. 찰리가 아자르에게 복부를 맞은 뒤 의료진의 부축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동안 스완지 시티 팬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대니 그레엄, 미구엘 미추, 파블로 에르난데스, 치코 플로레스, 호세 카냐스, 존조 셸비 등의 선수들을 보면 꼭 잘해서 떠난게 아니라[10] 도 상당히 폭망(...)테크를 많이탄다. [11] 망하지 않은 케이스를 뽑자면 길피 시구르드손[12] , 애슐리 윌리암스, 미셸 봄과 벤 데이비스[13] 정도.
3.1. 더비
- 2009년과 2010년 사우스 웨일즈 더비에서, 경기 방해와 집단 난투극이 벌어졌다.
3.2. 한국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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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용이 소속되어 있었다. 12-13 시즌, 스완지 경기를 보다 보면 한국인을 타게팅한 여러 광고를 만날 수 있다. 귀여운 글씨체의 "스완지 시티 페이스북"이라든가... 광고판이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맨유와 리버풀도 한글 광고를 활용하고 있다.
4. 시즌
4.1. 2011년 이전
원래 웨일스 남부는 전통적으로 럭비에 환장하는 지방이다. 1912년에 남웨일스 최초의 축구팀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스완지 타운 AFC'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지만 웨일스인들은 '''닥치고 럭비'''를 외친 탓인지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못했다.
창단 초기만 해도 팀 성적은 영 좋지 못했는데, 1926년 FA컵 준결승 진출과 레알 마드리드와의 친선전에서 3대 0으로 이긴 걸 빼고는 2~3부 리그를 전전하다가 1955-56 시즌에 이보르 알처치, 테리 메드윈 등을 축으로 1부 리그 진출을 노릴 찬스를 잡았으나, 주축 선수들이 시즌 도중에 타 팀으로 이적하는 바람에 시즌 후반에 힘을 거의 쓰지 못하여 1부 리그 진출은 물건너갔고, 이후 1965년과 1969년에 각각 3부와 4부리그로 추락하고 말았다. 또 4부 리그로 떨어진 1969년에 팀 소속 선수인 로이 에반스와 브라이언 푸르셀이 교통 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이렇게 수십년간 애물단지 취급을 받은 스완지 타운은 1969년에 팀명을 '스완지 시티 AFC'로 개칭하여 도약을 선포했고, 1978년에 리버풀 FC에서 활약한 웨일스인 스타 존 토샥이 선수 겸 감독으로 이적해 들어왔는데, 이는 풋볼 리그 역사상 최연소(28세) 감독으로 손꼽힌다.
존 토샥 체제 아래 팀은 발전을 거듭하여 3번의 승격 끝에 1980-81시즌 막판인 1981년 5월 2일에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물리치고 팀 역사상 첫 1부 리그 승격이라는 쾌거를 누리게 된다.
승격 첫 시즌인 1981-82 시즌을 6위로 마치면서 꽤 선전했으나, 이후 부진을 거듭하여 1982-83시즌에 21위로 강등된 이후로 하부 리그를 맴돌다가 2005년에 정든 벳치 필드(Vetch Field)를 떠나 리버티 스타디움으로 이전한 이후 의욕을 되찾은 팀은 지속적인 리빌딩을 거쳐 2010년에 브랜던 로저스가 감독으로 취임, 마침내 2010-11 시즌에 리그에서는 공격진보다 수비진의 활약이 좋은 준수한 시즌이었고, 챔피언쉽에서 45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리그 순위가 7위인 반면, 리그 최소 실점이 두번째로 적은 팀이었다. 반면 플레이오프에서는 주장 게리 몽크와 애슐리 윌리엄스의 수비를 바탕으로 스콧 싱클레어의 활약(해트트릭)으로 챔피언십 리그를 3위로 마감하고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여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게 되었다.
4.2. 프리미어리그 시절 (2011년 ~ 2018년)
프리미어리그로 올라온 스완지의 당면 과제는 단연코 잔류였고, 이를 위해 기존 자원들과 새로 영입된 선수들을 잘 융화시키는 쪽에 방점을 두었다. 더프리스 골키퍼가 떠나간 골키퍼 자리에는 FC 위트레흐트에서 미셸 포름을 영입했고, 공격진에는 웨인 라우틀리지, 대니 그레이엄, 리로이 리타를 데려왔다. 수비진 보강을 위해서는 토트넘에서 유망주 스티븐 코커를 임대해왔다.
첫 시즌 스완지는 4-3-3 전술을 가동했다. 미셸 포름 골키퍼가 리그 한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선발로 출장[15] 해 최후방을 든든히 지킨 가운데, 주장 개리 몽크는 기량 저하로 15경기 남짓 나서는데 그쳤고 부주장 앨런 테이트는 부상으로 시즌을 날렸지만, 그 대신 애슐리 윌리엄스가 실질적인 주장 역할을 맡으며 수비진을 이끌고 파트너로 임대생 스티븐 코커가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다. 측면수비는 왼쪽에 닐 테일러, 오른쪽에 앙헬 랑헬이 있었으며, 중원 3미들은 리언 브리턴, 조 앨런, 케미 아귀스틴/마크 가워로 구성했다. 이후 겨울 이적시장에 길비 시귀르드손을 호펜하임에서 임대영입하며 중원을 강화했다. 공격진에는 좌우측에 각각 스콧 싱클레어와 네이선 다이어가 위치했고 웨인 라우틀리지가 로테이션 멤버로 뛰었으며, 중앙에는 대니 그레이엄이 원 톱 스트라이커로 나섰다.
스완지는 이 해 브렌던 로저스 감독 지휘 아래 승격팀으로써는 꽤 고무적인 11위를 기록하며 선전했고, 특히 공격진에서 리그 12골을 넣은 그레이엄과 8골을 기록한 싱클레어의 활약이 돋보였다. 헌데 이러한 활약을 눈여겨본 리버풀 FC가 신임 감독으로 데려가면서, 스완지는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게 되었다.
이에 스완지는 12-13시즌을 앞두고 미카엘 라우드루프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시즌을 앞두고 스콧 싱클레어, 대니 그레이엄, 조 앨런이 모두 이적하고, 스티븐 코커 역시 임대 연장 없이 토트넘으로 복귀했기에 공백을 메우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구단에서는 제노아에서 치코 플로레스를, 아스널에서 카일 바틀리를 영입하며 중앙 수비를 보강했고, 미드필드진 보강을 위해 라요 바예카노에서 뛰던 미겔 미추를, 셀틱에서 기성용을 영입했다. 여기에 발렌시아 CF에서 파블로 에르난데스를 영입하고 비야레알 CF에서는 요나탄 더구즈만을 임대영입해 전력을 보강했다.
이러한 지원 가운데 라우드루프는 이른바 '스완셀로나'로 불리는 티키타카 전술을 스완지에 이식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미추가 공격형 미드필더에서 아예 최전방 공격수로 자리를 옮겨 리그에서만 18골을 넣는 미친 활약을 보여주며 리그 득점 랭킹 5위에 랭크되었고, 닐 테일러가 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가 있었으나 유스 출신 벤 데이비스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공백을 지웠다. 또한 트벤테에서 계약만료로 풀려 공짜로 물어온 드와이트 티엔달리가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랑헬과 함께 우측면 수비를 잘 분담해줬고, 임대영입한 더구즈만도 밥값을 충분히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스완지는 리그에서는 9위를 기록해 전 시즌보다 향상된 성적을 거두고, 리그 컵에서는 아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2013-14시즌에는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여주면서 성적이 크게 떨어졌다. 스완셀로나 전술 자체가 선수들의 체력 부담이 심해 전반전에 비해선 후반전에, 리그 전반기에 비하면 후반기에 하향세가 심했는데 2013-14시즌에는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이게 극대화됐다. 라우드루프와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 속에 기성용이 선덜랜드로 임대된 가운데 존조 셸비와 호세 카냐스를 영입해 중원을 보강했지만, 리언 브리턴이 노쇠화로 인해 페이스가 처지면서 중원 경기력은 오히려 하향세를 그렸다. 미추의 활약 역시 한 시즌 반짝으로 그쳤고, 여기에 유로파 병행으로 체력문제가 더욱 두드러졌다. 여기에 라우드루프와 선수단 사이에 불화가 있다는 이야기가 도는 가운데 2014년 2월 라우드루프가 경질되었고, 주장 개리 몽크가 감독대행을 맡아 나머지 시즌을 이끌고 팀을 수습하는데 성공했다.
시즌 별 진행 상황 및 상세 내용은 아래 문서들을 참조.
4.2.1. 2011-12 시즌
'''웨일즈 구단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 승격, 승점 47점으로 11위로 잔류'''
스완지 시티 AFC/2011-12 시즌
4.2.2. 2012-13 시즌
'''팀 역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 유럽대항전 진출'''
스완지 시티 AFC/2012-13 시즌
4.2.3. 2013-14 시즌
'''미구엘 미추의 부상과 드와이트 티엔달리의 아쉬운 시즌, 보니라는 공격수의 발견'''
스완지 시티 AFC/2013-14 시즌
4.2.4. 2014-15 시즌
'''구단 역사상 최고 순위, 최고 승점 달성'''
스완지 시티 AFC/2014-15 시즌
4.2.5. 2015-16 시즌
'''우여곡절과 부침을 겪었지만, 다시 한 번 잔류에 성공한 과도기'''
스완지 시티 AFC/2015-16 시즌
4.2.6. 2016-17 시즌
'''6시즌 만에 찾아온 강등 위기... 그나마 막판에 극적으로 남았다.'''
스완지 시티 AFC/2016-17 시즌
4.2.7. 2017-18 시즌
'''7시즌 만에 결국 챔피언쉽으로 내려가게된 스완지 시티'''
스완지 시티 AFC/2017-18 시즌
4.3. 다시 돌아온 EFL 챔피언십 시절 (2018년~ )
4.3.1. 2018-19 시즌
7년만에 2부리그로 다시 돌아온 후 맞는 첫 시즌이다. 지난 시즌 중반 부임해 무너져 가던 팀을 잔류시킬 뻔도 했던 카를루스 카르발랼과는 재계약하지 않으며 결별하였다. 그리고 새 감독으로는 외스테르순드 FK에서 8년 간 감독 생활을 하며 4부리그에 쳐져있던 팀을 1부리그까지 승격시키고 지난 시즌 유로파 리그 32강에서 아스날 FC를 꺾는 등 지도력을 인정받은 그레이엄 포터를 새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더불어 팀의 레전드이자 오랜 기간 1군 코치로 활동해오다 폴 클레멘트 체제부터 코치에서 물러났던 앨런 커티스가 1군 코치로 다시 복귀하였다.
2017-18시즌 감독 대행을 맡기도 했던 팀의 레전드, 레온 브리튼이 은퇴를 했고 기존 스쿼드에서 많은 선수들을 자유 계약 및 이적으로 떠나보내며 스쿼드 정리 및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우선 타미 아브라함, 헤나투 산체스, 앤디 킹은 임대 연장 없이 지난 시즌이 종료됨과 동시에 원 소속팀으로 복귀하였다. 기성용과 앙헬 랑헬은 계약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자유 계약으로 팀을 떠났다. 또한 지난 시즌 팀의 중앙 수비를 외로이 책임졌던 알피 모슨을 1500만 파운드에 승격팀 풀럼 FC로 이적시켰고 들쭉날쭉한 폼을 보여주던 페데리코 페르난데스도 600만 파운드에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로 이적시켰다. 홈 그로운 제도를 충족시키는데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A매치 차출도 받을 만큼 성장한 모슨은 더 비싸게 팔 수도 있었으나 강등된 팀의 사정때문에 다소 싼 가격에 이적시킨 것은 아쉬운 부분.[16]
또한 막장 수비진 뒤에서 지난 시즌 내내 고생했던 우카시 파비안스키도 700만 파운드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였으며 꽤나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던 샘 클루카스도 600만 파운드에 스토크 시티 FC로 이적하였다. 이외에도 실패한 영입이었던 로케 메사는 800만 파운드에 지난 시즌 후반기에 임대를 떠났던 세비야 FC로 완전 이적하였고 지난 시즌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로 한 시즌간 임대를 떠나 그럭저럭 뛴 조르디 아마트 역시 라리가 승격팀인 라요 바예카노 데 마드리드로 1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남기고 떠났다. 4순위 센터백이었던 카일 바틀리는 지난 시즌 활약에 비해 꽤나 짭짤한 이적료인 400만 파운드를 팀에 안기고 강등팀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FC로 이적하였다.
지난 시즌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팀 역사상 최고 이적료를 지불하면서까지 복귀시켰던 안드레 아예우는 후반기에 폭망한 경기력만을 남긴 후 시즌 시작에 앞서 터키 쉬페르 리그의 페네르바흐체 SK로 1시즌 간 임대를 떠났다. 또한 안드레의 동생이자 지난 시즌 팀 내 최다 득점자였던 조르당 아예우는 이적하기 위해 팀 훈련에 불참하는 패기를 보여준 끝에 크리스탈 팰리스 FC로 1년 간 임대를 가게 되었다. 더불어 이미 팬들의 기억 저 먼 곳으로 사라진 잊혀진 공격수 보르하 바스톤 역시 지난 시즌 말라가 CF 임대에 이어 이번 시즌에는 데포르티보 알라베스로 임대를 떠났다.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이적 시키며 꽤나 많은 이적료 수익을 거두었는데 영입은 젊고 유망한 공격 자원 위주로 하여 많은 이적료를 지출하지는 않았다. 우선 지난 시즌 종료 후 리버풀 FC에서 자유 계약으로 풀린 98년 생의 젊은 자원인 얀 드한다와 2년 계약을 맺었고 레알 마드리드 후베닐에서 뛴 왼쪽 풀백, 조르디 고베아와 3년 계약을 맺었다. 또한 99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즌 선덜랜드 AFC에서 리그 경기를 26경기나 뛴 조엘 아소로를 200만 파운드를 주고 데려왔다. 추가로 지난 시즌 노팅엄 포레스트에서 후반기부터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던 측면 윙어, 배리 맥카이를 150만 파운드를 주고 영입하였다. 더불어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96년생의 젊은 미드필더인 베르산트 첼리나를 300만 파운드에 영입하였다. 계약 기간은 4년. 그리고 8월 초에는 지난 시즌 레인저스 FC의 주전 레프트백이었던 데클란 존과 3년 계약을 맺고 데려왔다.[17]
위에서 보듯 젊은 공격 자원들을 보강하며 스쿼드의 전체적인 연령을 낮추며 세대 교체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모슨, 페르난데스, 아마트 그리고 바틀리에 이르기 까지 센터백을 4명 씩이나 내보냈는데 이를 메꿀 대체 자원을 8월 중순 현재까지 한 명도 영입하지 않은 부분은 심히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챔피언십으로 떨어지며 지난 시즌에 비해 리그 경기만 해도 8경기가 늘어났으며 거기에다 컵 대회까지 치르기에는 수비진, 그 중에서도 중앙 수비수가 심히 부족한 상황이다. 공식적인 여름 이적 시장은 마감이 되었으나 8월 31일까지 가능한 임대 영입을 통해 이에 대한 보강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새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에 대한 변경 역시 이루어졌다. 지난 시즌까지 후보였던 크리스토퍼 노드펠트가 파비안스키가 떠난 스완지의 골문을 지킬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등번호 기존 13번에서 대게 주전 골리가 다는 1번으로 변경하였다. 또한 지난 시즌 임대 이적으로 후반기만 뛰고도 폭발적인 활약으로 반슬리 FC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던 올리버 맥버니가 임대 복귀 이후 주전 공격수의 상징과도 같은 9번으로 등번호를 바꾸었다. 기존 스완지 시절 등번호는 62번. 올손은 기존 16번에서 풀백들이 주로 다는 3번으로 바꿨으며 임대 복귀한 몬테로는 브리튼이 달던 7번으로 등번호를 바꿨다.
8월 4일 열린 셰필드 유나이티드 FC와의 챔피언십 원정 개막전에서는 후반 막판 터진 얀 드한다의 역전골에 힘입어 1:2로 승리하였다. 지난 시즌 반슬리 FC 임대를 통해 챔피언십에서의 경쟁력을 증명한 맥버니는 0:1로 끌려가던 71분 경 동점골을 기록하며 지난 시즌 후반기의 활약이 거품이 아님을 증명해 보였다.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영입된 맥카이 역시 드한다의 역전 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을 기분좋게 출발했다. 사실 드한다 역전 골은 드리블에 이어 맥카이에게 정확한 크로스를 날려준 예페르손 몬테로의 드리블도 한 몫 했다.
리그 2라운드 홈 개막전에서도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에 1:0 승리를 거두며 2연승을 기록하였다. 경기 초반, 맥카이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올리버 맥버니가 실축하며 갑분싸가 되기도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조엘 아소로가 측면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제이 풀턴이 정확한 헤더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기세를 잡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양팀이 서로 공격을 주고 받다 그대로 경기가 끝나며 2연승 확정. 첼리나는 중앙에서 공격 전개를 담당하며 위협적인 장면을 몇 차례 보여주었으나 맥버니는 페널티킥 실축에 이어 후반 1대 1 찬스까지 날리며 오늘 경기에서는 전체적으로 기대 이하의 모습이었다. 다만 경기 내내 비가 세차게 쏟아지며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볼 컨트롤에 어려움을 겪은 부분은 감안할 만하다. 더불어 지난 리그 경기가 끝나고 페르난데스와 아마트가 이적함에 따라 중앙 수비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고 이번 경기에서는 반 데 후른의 새로운 파트너로 지난 시즌까지 유스팀에서 뛰던 조 로든이 첫 프로 데뷔 전을 가졌다. 다만 교체 자원에는 센터백 자원이 이번 경기에서 한 명도 없는 등 중앙 수비 뎁스가 종잇장보다 더 얇아진 부분은 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 주전 골리인 노드펠트 역시 전반 초반 부상을 당하며 교체되어 나갔다.
이후 잔류에성공했는데 라이벌인 카디프 시티 FC가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되면서 19-20시즌 EFL 챔피언십에서 사우스 웨일즈 더비가열리게 되었다.
시즌 종료해 5월 20일, 감독인 그레이엄 포터가 브라이튼으로 이적(?)을해서 다시 공석이 되었다.
4.3.2. 2019-20 시즌
2019-20 시즌 10라운드 기준 1위를 달리며 3년만의 EPL 복귀를 노리고 있다.
13라운드 기준 페이스가 조금 떨어지며 8위로 밀려났다.
46라운드 직전까지 7위에 위치한 스완지 시티는 반드시 46라운드 레딩전에서 승리하고, 노팅엄 포레스트가 스토크시티에게 패배하고 직전까지 있었던 5골득실차를 따라 잡으면 기적적으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는 스완지가 4-1로 승리, 노팅엄 포레스트가 1-4 패배하면서 기적적으로 티켓의 주인공이 뒤바뀌게 되었다. 4강전 상대는 정규시즌 3위 브렌트포드 FC 1차전은 앙드레 아이유의 골로 1:0으로 승리했지만 2차전에서 3:1로 패하면서 합계 2:3으로 승격에 실패했다.
4.3.3. 2020-21 시즌
25라운드 기준 13승 8무 4패로 다음 시즌 EPL 승격에 매우 유력한 팀들중 하나이다.
5. 스쿼드
5.1. 1군 선수단
5.2. 임대 명단
5.3. 23세 이하 팀
6. 구단 직원들
6.1. 보드진
6.2. 스탭
[1] /ˈswɒnzɪ ˈsɪtɪ/. Swansea의 영국 표준 발음은 /ˈswɒnzɪ/'스원지'지만 관용적 표기를 따른다.[2] 스완지 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설립[3] 2010년 5월 15일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오스트리아 출신 스트라이커 베시안 이드리자이(Besian Idrizaj)를 추모하는 의미로 생전 그가 달았던 번호인 40번을 영구결번하였다.[4] 스완지 시티 홈경기에서 지겹도록 들을 수 있는 'Barmy Army' 응원구호의 몬데그린. 사실 영국에 퍼져있는 흔한 응원 구호인데 스완지 시티 홈에서 유난히 크게 들린다. 응원법은 '현 감독 이름+Barmy Army+짝짝짝짝'의 무한반복.[5] 사실 웨일스 내에도 웨일스 축구 협회가 주관하는 '''웨일스 프리미어리그'''가 존재한다. 그러나 대회 창설 당시부터 여러 논란이 많았고, 카디프, 스완지와 같은 강팀들은 축구 수준 격차를 이유로 웨일스로의 합류를 단칼에 거절했고 다른 몇몇 구단들 또한 거부하여 결국 처음 구상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뉴포트 카운티 AFC 등 웨일스 리그 합류를 거부한 클럽들은 여전히 잉글랜드 리그 시스템 내에 남아 있지만, 현실적으로 프리미어 리그 혹은 챔피언쉽 팀들과 비슷하게 맞붙을 수 있는 팀은 카디프와 스완지가 유이하다.[6] 선수들을 키워서 빅클럽으로 이적시켜 많은 돈을 벌고, 그선수들은 망한다... [7] 두 선수 모두 활약상을 바탕으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가 폭망했다. 싱클레어는 방출당했고 보니는 스완지 시티로 다시 돌아왔으나 다시 날개를 펼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8] 리버풀 FC 이적 초반에는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유로 2016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스토크 시티로 이적했다. 그나마 떠난 선수들 중 가장 나은 편. [9] 이적하자마자 큰 부상에 시달리는 등 저주가 시작되었다..[10] 그레엄은 잉글랜드 향수병, 스페인 선수들은 내분 및 부상(미추)[11] 실제로 주장 윌리암스 이적설에대한 현지팬들의 반응과 관련된 기사에서 '팀을 떠나서 누구도 잘되지 않았으니 떠나지 말아라'라는 반응들이 상당히 많았다.[12] 스완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 하지만 이적한 해 가레스 베일이 미친 전성기를 맞이하면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이후로도 팀에 크게 기여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스완지로 다시 돌아왔는데, 복귀와 동시에 팀을 캐리하였다. 스완지가 강등되자 2017년 에버튼 FC로 이적, 이곳에서는 승승장구 중이다.[13] 미셸 봄은 애초에 요리스의 백업으로 영입된 선수였고, 벤 데이비스는 초반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 대니로즈의 부상 이후 계속 선발출장하면서 팀의 핵심선수로 자리잡았다.[14] [image] 위 광고판의 글은 스완지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 함준범씨가 작성했다고 한다. 구단 측에서 궁금해서 무슨 뜻인지 물어보기도 했다고.. 함준범은 구단에서 마케팅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가끔 구단에 다른 일손이 부족할 때는 돕기도 한다고.[15] 남은 한 경기는 세컨 골리였던 게르하르트 트레멜이 출전했다.[16] 사실 반슬리 FC에서 영입할 때 550만 파운드에 데려왔으니 1000만 파운드 가까이 남겼다는 점에서 꽤나 짭잘한 차익을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17] 공교롭게도 데클란 존은 유스 시절부터 프로 커리어 초반을 스완지 최대의 라이벌인 카디프 시티 FC에서 보냈다.[18] 아자르에게 걷어차인것으로 유명한 볼보이의 아버지이다.[19] 원문 표기는 Romie Chaudhari. 미묘하게 이분과 이름이 비슷해보인다.[20] 스완지의 레전드[21] 스완지의 레전드 공격수로 스완지 팬들에게 인기가 많다.